Info./Pastor's Column

삶과 분리된 종교생활에 익숙해진 우리..

YKCC 2022. 10. 8. 13:57

(호세아 6장)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왜 이런 말씀이 등장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호세아 시대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길래 저런 말씀이 선포되어야만 했을까? 안타깝게도 당시의 백성들은 표면적으로는 멋있고 완벽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율법의 절기들을 잘 지키며 모여서 예배했다고 합니다. 화려하구 웅장한 예배로 음악이 너무도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지도자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사회적인 약자들을 돌보지 않고, 도리어 착취했다고 합니다. 삶과 철저하게 분리되어진 종교생활이 익숙해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했고, 율법도 열심히 지켰지만 그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도 회개도 적용도 없었던 것입니다. 

 

'종교적 신경안정제'

 

오래전에 읽었던 마이클 호튼 목사님의 책에 나오는 충격적인 단어였습니다. 매주 교회에 나오고 매주 찬양하고 말씀을 듣지만, 예배와 말씀이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깨달아지고 적용되어지지 않아서 아무런 삶의 변화도 없다는 그런 뜻이었습니다. 요즘 교회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냥 교회만 습관적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회개도 없이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종교생활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종교적 신경안정제를 꾸준히 맞으면서 내가 충분히 경건하고 신앙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고 있다고 안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신앙생활은 너무 습관적이 되어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는 세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마지막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람은 바로 마지막 사람입니다. 호세아 시대에 종교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이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교회에 나오지만 여전히 삶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일까요? 우리가 분명히 점검해보고 돌아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오래다니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삶 속에서 아주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기도하면서 씨름했던 경험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천년 동안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아무일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저 성경말씀을 읽고 좋은 말씀이라고 잠시 생각하고 금방 덮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내 삶에 적용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며 기도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없으면 복음은 우리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VS '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만 나는 안될거다'

 

어디선가 너무도 많이 들어본 메시지 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제대로 공부하고 탐구하고 우리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복음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우리가 문제일 뿐입니다.

 

제가 성도님들에게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저의 질문의 의도는 정말 내 삶 속에서 그동안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했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등등. 그 외에도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들어온 그런 정답같은 대답들 입니다. 왜 이렇게 밖에 우리가 하나님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삶에서 경험해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잘 출석하고 봉사하고 헌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내 삶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 하나님을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팀켈러 목사님의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어쩌면 내가 믿기 좋고 편한 나만의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그 하나님이 나의 삶에는 간섭하지 않도록 적당히 선을 그어둔채 그 하나님만을 편하게 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표현이 없어서 어떻게 적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명백히 '우상숭배' 입니다.

너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내용만 적어서 불편하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런 질문도 있을 것입니다.

 

그냥 저만의 부족한 결론입니다.

 

1.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세요. 그리고 회개하세요. 그리고 내 삶에 변화를 위해 기도하세요. 이 과정이 없으면 우리는 그냥 역사책이나 국어책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2. 삶의 사소한 일에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연습을 하세요. 내 생각과 내 뜻대로 먼저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습간을 가지세요. 그래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고, 그분을 더욱 깊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내 삶의 가장 우선순위가 예배이며, 주님을 더욱 깊이 아는 것이라 선포하세요. 그리고 이 진리 그대로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세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대화하고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가정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엄마 생각하는 하나님, 아빠가 경험했던 하나님, 그리고 자녀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을 함께 대화할 때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와 회복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우리와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하기 위함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게 인격적으로 가까워지고 회복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