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Pastor's Column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요약&적용(1)

YKCC 2023. 8. 24. 22:37

2016년에 이 책을 처음읽고 나름대로 정리해본 내용을 다시 읽어보며 리마인드 해보았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 모험을 통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여정에 허락하신 도전의 현장을 혹독하게 통과한 후에야 그 믿음은 한 단계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도전의 현장은 평생 동안 수도 없이 반복된다. 그때마다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는 안정적이고 편안함을 뒤로한 채 새로운 모험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이고, 그렇게 시작된 모험은 더욱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며, 더욱 견고해진 믿음은 또 다른 모험으로 뛰어들 수 있는 힘을 제공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성공이며, 제자로서의 삶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거룩하게 구별되어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 바로 교회이다. 우리 교회들은 우리의 왕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모험에 동참하는 삶을 숙명으로 가지게 된다. 우리는 복음을 증거하며,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해야 한다. 이것은 굉장히 도전적일 뿐 아니라 수많은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갑자기 닥칠 위험에 대비해야 하며, 험난한 도전과 모험을 넘어설 용기와 열정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험은 놀랍게도 교회의 생명력을 왕성하게 해준다. 공동체는 살아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를 결단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다. 이 사명을 소홀히 하는 교회는 교회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은혜의 풍성함을 상실한 채 겉만 화려함을 자랑하며 죽음의 골짜기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창세기 12장의 이야기를 보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떠나라고 명하실 때,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길을 떠났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답답하고 두려운 어둠속을 향해 전진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붙잡고 의지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가는 곳에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뜻이 있는 곳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두려울 것이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어리석은 도전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이 모험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탈기독교 시대이다. 더 이상 기독교와 교회는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기독교는 쇠퇴했고, 교회는 문을 닫고 있으며, 성도들마저 교회에 등을 돌리고 세상을 쫓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교회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는 분명히 모험을 향한 여정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위험하고 도전적인 여정을 혼자서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다. 교회는 무리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특별히 구별 되어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우리는 이 거룩한 모험을 함께 감당할 공동체가 있다. 안타깝게도 현대교회는 더 이상 용기와 모험에는 관심이 없다. 목적과 사명을 잃어버린 교회는 단순한 세상의 취미활동이나 사교활동의 동호회 모임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안정을 취하고 유지하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모여서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다. 순교자들을 생각해보라 어느 누구도 안주하거나 안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험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도리어 굳어지고 썩어지는 삶이 아닌 모험과 도전 중에 닥쳐오는 죽음을 택했다.

 

교회 공동체는 모든 것을 함께 해야만 한다. 이것이 성경적인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두려움들이 몰려올 때에 교회는 집단적으로 함께 그 고난을 이겨낸다. 고난을 이겨낸 교회 공동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대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 연대감을 코뮤니타스라 칭한다. 이 코뮤니타스는 극한의 상황을 견디고 돌파하는 공동체가 가지게 되는 결과물이다. 그러나 코뮤니타스가 일어나기 이전에 모험, 시련, 위기 등을 겪는 것을 경계성이라 말한다. 정리하면 경계성이 닥쳐왔을 때, 공동체는 신비스러운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동체원들은 닥쳐온 위기와 싸우기 위해 서로를 의존하기 시작한다.

코뮤니타스는 교회가 아닌 세상의 일반단체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특별히 위험을 수반한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보면 그들은 각별한 결속력과 연대감을 가지며 모임을 지속한다. 이런 결속감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하며 함께 느끼고 경험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공유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을 생각해보라. 함께 전쟁에 참전하며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거는 전우들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이 신비로운 유대감을 보라.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 공동체는 어떤가? 지금의 교회는 과도한 안정감에 빠져있다. 크리스천 버블 현상에 발목이 잡혀 끼리끼리 어울리고 모이는 모습이 현대 교회의 한계이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 목적이 이런 것들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안정함을 벗어나 경계성으로 나아가야 하고, 모험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즉 복음을 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가운데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은 이 세상 어느 위험한 것보다 더욱 치명적이고 더욱 위험하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으로도 교회의 심장은 열정적으로 뛰게 될 것이다.

성경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엄청난 삶의 고난과 대가를 치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특별히 바울은 채찍질, 매질, 투옥, 파선 등과 같은 극한의 경험을 하며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죽기까지 실행했다. 이들은 현실의 안정감을 버렸다.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녔으며, 가족을 뒤로한 채 모험을 떠났다. 그들의 사명은 한가지였다. 더 나은 하나님의 나라를 꿈꿨던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천국에 있었다. 겉으로는 바보 같고 어리석은 삶을 산 것 같지만, 그들의 종착역은 하나님의 나라였다.

 

현대 교회에 이런 유대감이 필요하다. 단기선교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 엄청난 유대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했던 사람들만 보면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나는 신비로움이 바로 코뮤니타스의 매력이다. 교회는 모험을 즐겨야 한다. 모험을 통해 구원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 모험의 기회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경계성과 코뮤니타스의 이야기를 전파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런 모험의 삶을 동경해야만 한다. 멘토제도를 만들어 끊임없이 후배들을 가르치고 양육해야한다. 우리 안에 안주하려고 하는 마음을 지속적을 버리도록 가르쳐야 한다. 교회는 이런 코뮤니타스를 모른다. 아마도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개인주의적이고 나이스한 교회의 모습은 공동체의 유대감을 완전히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기회는 남아있다.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의 시작임을 잊지 말고, 지금부터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도전하고 싶고, 모험하고 싶은 어떤 일들을 함께 일으켜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겪어보는 것이다. 그 결과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