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까칠하고 정확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불의한 일을 용납하지 못했고, 잘못된 일을 찾아내고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에 늘 관심갖고 살아왔습니다. 좋은 말로는 정의감이 넘치는 것 같지만, 진실은 나만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교만에 불과 했음을 이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왜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갈등이 생기고 서로 미워하고 싸우게 될까요? 잘못한 사람이 있고, 잘못을 당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봐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며 화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너 문제 있는거 아니냐고 따지기 시작합니다. 잘못을 따지는 사람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변명하고 논쟁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건 관계의 부서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사람이자나..' 누군가의 카톡문구에서 이 글을 읽었습니다. 내 기준에서는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고 화가 날때, 우리의 마음에 이 문구를 떠올려본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나는 뭐 얼마나 괜찮다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바라보면서 나의 허물을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함이 우리에게는 왜 없을까요? 마치 잘 걸렸다는 듯이 다른 사람의 잘못과 실수를 찾아내어 혼내주고 싶은 교만함이 우리에게는 너무 많이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은 늘 옳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교만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만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누구도 심판관도 재판관도 될 수 있는 자격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그 위치가 주어집니다. 여러분이 판단자의 위치에 있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 잘못을 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고민과 배경속에서 그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 틀리다고 잘못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아~ 우리 생각이 달랐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여기면 우리의 관계는 부드럽게 유지가 됩니다.
반면에 내가 잘못을 지적당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누군가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고 화를 낼 때에, 그 사람에 대항하여 설명하고 해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변명과 논쟁은 더 큰 갈등만 불러올 뿐입니다. 우리는 때로 억울하지만, 나의 연약함 이라고, 나의 실수라고 인정 할 만큼의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나의 잘못이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돌아봐야 합니다. 잘못을 했다면, 진실된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억울해도 조용히 침묵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후의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틀림과 다름 사이에서 수도 없는 갈등과 다툼을 해왔습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죽일듯이 달려들고, 정죄하고 판단했던 교만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 치열한 싸움의 끝에 남는 것은 홀로남겨진 외로움 뿐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형교회가 썩었다고 세습을 한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죽일듯이 달려들며,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제가 만약 그 위치에 있었다면, 아 얼마나 욕심이 날까, 얼마나 부담이 되고 힘드실까.. 그런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합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누군가가 실수 했을 때, 그 실수가 나에게도 있다고 여겨야 합니다.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라면 저러지 않을텐데?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교만함의 늪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우리모두가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하기 보다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배워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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