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Wooram's Column 55

엄마, 아빠, 그리고 사랑

지난 4달 동안 요한일서부터 삼서까지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주면 요한삼서까지 모든 설교가 마무리 됩니다. 일부의 내용을 설교해본적은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읽고 묵상하며 이 편지의 전체를 깊이 생각해본적은 처음입니다. 같은 글을 읽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적용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각 사람의 살아온 배경, 그리고 그 사람의 인격에 따라서 더 마음에 와닿는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편지글을 읽고 읽고 또 읽으면서 '사랑'이 깊이 느껴졌습니다. 이건 정말 완벽한 사랑의 책이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의 자녀들에게 쓰는 편지가 바로 요한일서..

오늘은 돈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습니다. 재정이라는 말보가 그냥 직접적인 표현으로 돈이라 적어봅니다. 저희 교회의 모임이 시작된지 어느덧 2년반이 다 되어 갑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저희 교회는 여러가지의 어려움을 잘 이겨내며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저는 이 교회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재정적으로 혹은 다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잘 이겨내었습니다. 교단의 도움이 있었고, 주변의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고, 저희 교회를 입양해서 서포트 해주는 RRCC(현지캐나다교회)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우리 교회는 2020년에는 많이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저희는 최근에 계속에서 재정적으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많이 보내주셔서 어느덧 우리는 100여명이..

교회 공동체에게 주신 특권(1)

요한일서의 말씀을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수도 없이 반복되서 나옵니다. 사랑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본다면, 사랑을 어떻게 정의 내리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만큼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 사람이 가진 삶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사랑은 너무도 다양하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은 달콤한 것이지만, 누군가에는 지겹고 무섭고 전쟁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랑이 쉬울까요? 아니요. 저는 오히려 어렵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만큼 어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

비긴 어게인 3를 보면서..

오늘은 특별한 주제를 적기보다는 그냥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끄적여 봅니다. 한번도 버스킹 공연에 직접 참여 해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음악도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합니다. 나름 잘한다고 생각도 합니다. 한가지 음악에 관해서 꿈이 있다면, 함께 할 밴드를 결성해서 비긴어게인과 같은 공연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 방송이 굉장히 유명하고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방송이라고 들었습니다. 1, 2는 보지도 않고, 3를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이탈리아에 가서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길거리 공연을 하는 것, 그 아름다운 도시와 자연 그리고 거리 뿐만 아니라, 마음을 적시는 음악까지 있어서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방송이었습니다. 문득, 이 방송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나이아가라에도 와주면 참 좋겠다...

2년이 지났습니다.

참 세월이 빠릅니다. 캐나다에 처음와서 적응하면서 허우적 거리던 시절이 다 지나고, 이제는 이 곳이 내 집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얼마전 오랜만에 한국에 가족들을 방문하고 왔는데요. 토론토 공항에 내려 근처 주차장에서 내 차에 오르는 순간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는지 모릅니다. 제 욕심으로는 평생 이곳에 살고, 이 교회를 섬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하나님은 절대 저를 그렇게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얼마전에는 YKCC 2주년 창립감사예배를 은혜속에 드렸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해주셨습니다. 2017년 가을에 저희 가정과 지희자매까지 다섯명이서 예배드렸던 한주 한주가 떠오릅니다. 매주 집에서 무거운 건반과 스피커와 밥통을 들고 교회에 와서 예배했던 모습이 ..

우린 평범한 사람

사람들은 흔히 종교지도자 들에게 굉장히 높은 수준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평가를 내립니다. 목사인 저도 피해갈 수 없는 평가를 늘 받고 살아갑니다. 목사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목사님이 너무 하셨다. 이런 평가와 같이 저는 관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제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저는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만의 언어로는 '인간미'라는 단어를 씁니다. 저는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적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아내와 차안에서 소리를 크게 내며 다투었습니다. 의견 충돌이 있었고, 여러가지로 몸도 마음도 조금 지쳤습니다..

안정감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기 보다는 마음에 불쑥 찾아온 불안감을 적어봅니다. 캐나다에 온지도 2년이 넘었습니다.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린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와 이 지역에 잘 적응했고, 아직도 한참 멀었지만 교회도 조금씩 안정되가고 있는 분위기 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캐나다에 와서 많은 것들이 안정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내 집에서 편하게 살며, 좋지는 않지만 내 차를 끌며, 맑은 공기와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원, 수영장 등이 너무도 잘 되어있습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편리한 도시에서 살며, 언제든 놀러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곳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습니다. 3~4명이 우리집 거실에서 교회를 시작했다가 이제는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멋있는 교회건물이 있고, 매..

나의 한계과 누군가의 눈높이

요즘은 매일매일 수영장을 다니며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신청 해놓은 비자관련해서 혹시나 추가적인 신체검사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절대! 고혈압이 나오면 안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관리중입니다. 사무실 한쪽에 놓여있는 초코파이가 저를 유혹하네요. 저는 매일밤 늦은시간에 수영을 하고 곧바로 사무실에 와서 늦은 밤이나 새벽까지 일을 하는 편입니다. 올빼미 스타일 이기도하고, 밤의 고요함이 저에게는 집중력을 높여줍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무실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하는 침묵의 시간을 많이 갖게됩니다. 얼마전에 '입맞춤'이란 음악방송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산들이라는 가수와 딘딘이라는 램퍼의 '한숨'이라는 ..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

저희 교회의 예배가 시작된지 1년 반이 흘렀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5년은 지난 것처럼 길게 생각됩니다. 저희 가정에서 개척예배를 시작으로 RRCC 교회의 건물로 들어오게되고, 창립예배를 드리고, 저의 오피스가 생기고, 이제는 지하 예배실에서 1층 본당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 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는 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교회는 시작도 이어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인간의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주면 지희자매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지희는 저희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저희 교회의 많은 영역에서 귀한 섬김을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어주시는 만남에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

목사가 목회를 언제까지 하면 좋을까요??

얼마전에 지구촌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진재혁 목사님께서 사임에 관한 메시지를 하신 영상을 보았습니다. 청빙 받으신지 고작 8년 밖에 안되었고, 누구도 진재혁 목사님의 사임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보통 중대형 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게 되면 은퇴시기인 65세~70세 까지는 목회를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요즘은 100세 인생이다보니 70세 은퇴하시는 목사님들도 아쉬워 하시고, 더 사역을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진재혁 목사님의 그 메시지를 들으며 표면적인 사임의 결정도 대단하지만, 그 분의 떨리는 목소리 안에 나의 몫은 여기까지라는 단단한 내려놓음의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그냥 계속 사역을 해도 누가 뭐라 그럴 사람도 없습니다. 성도들은 오히려 목사님께서 더 사역을..